지역별 양봉산업 육성 조례와 지원: 꿀벌을 살리고 농촌을 지키는 법적 기반
양봉을 시작한 지 어느덧 5년이 넘었습니다. 처음엔 그저 벌꿀을 직접 채취해보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양봉이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농촌 경제, 생태계, 먹거리 산업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반 산업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양봉 산업은 오랫동안 정책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양봉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본격적으로 지역 맞춤형 양봉 산업 육성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제가 경험한 사례와 함께, 전국 주요 지자체들이 어떻게 양봉 산업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지역별 양봉 산업 육성 조례 제정의 흐름과 그 의미
양봉 산업 육성 조례는 2019년 이후 전국 각지에서 점차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양봉농가의 지속적인 요구와 기후 위기 속 꿀벌 생태계 붕괴에 대한 경각심이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이 조례가 제정된 곳 중 하나는 경북 상주시입니다. 이곳은 전통적으로 양봉이 활발한 지역이지만, 외국산 꿀 유입과 꿀벌 폐사 문제로 위축된 상황이었습니다. 조례는 “양봉농가에 대한 기술 지원, 꿀벌 보전, 국산 벌꿀 소비 촉진, 기자재 지원, 교육 및 홍보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았습니다.
이어 강원도, 충청북도, 전라남도, 경기도 등도 유사한 조례를 제정하였고, 현재는 15개 이상 광역·기초지자체에서 양봉산업 관련 조례가 시행 중입니다. 각 조례는 지역 여건에 따라 다양한 차이를 보입니다. 예를 들어 전라남도는 토종벌 보호와 관련된 조항을 포함하고 있으며, 경기도는 스마트양봉 시스템 도입에 대한 지원 조항을 명문화했습니다.
조례 제정의 가장 큰 의미는 양봉이 법적 산업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전까지 양봉은 축산물로서의 지위도 모호했고, 지원 제도도 구체적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례가 생기면서 지자체 예산 편성, 인력 배치, 기술보급 사업 등에서 공식적인 지원이 가능해졌습니다. 제가 거주 중인 충북 진천군 역시 2023년 ‘양봉산업 육성 및 지원 조례’를 제정했고, 그 이후로 군청에서 양봉인 대상 간담회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건의해도 답이 없던 목소리가 이제는 제도 속에서 실현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 조례에 따른 실질적 지원 내용과 농가 체감 변화
조례가 단순히 문서로만 존재한다면 큰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실현되느냐입니다. 각 지역의 조례가 현실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사업계획과 예산 배정, 담당 공무원의 전문성, 그리고 농가와의 지속적인 소통이 필요합니다. 제가 체감한 사례를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설명드리겠습니다.
첫째, 기자재 지원 확대입니다. 충북 진천군의 경우, 조례 제정 이후 벌통, 채밀기, 사양기 등 주요 기자재에 대해 최대 80%까지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해 자동사양기를 구입하면서 해당 보조를 받아 실제 비용 부담이 절반 이하로 줄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중고로 구하던 장비를, 이제는 신품으로 장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장비의 질이 높아지면 벌 관리가 쉬워지고, 생산성도 크게 개선됩니다.
둘째, 꿀벌 생태 보전 프로그램 확대입니다. 전남 해남군은 토종벌 보호와 생태복원 사업을 중심으로 꿀벌 서식지 조사, 야생화 조성 사업을 연계해 운영 중입니다. 해당 지역에서는 야산에 야생화를 심고 꿀벌 서식지로 유도하는 ‘꿀벌 꽃길 조성 사업’이 시행 중이며, 인근 양봉농가들은 벌의 활동 반경이 넓어졌다고 말합니다. 저도 1년에 두 차례 군청에서 주최하는 ‘꿀벌 생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으며, 야외 탐방을 통해 꿀벌과 지역 생태계의 상호작용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셋째, 국산 꿀 판로 확대와 브랜드 마케팅입니다. 경북 영주시에서는 ‘영주 꿀’이라는 지역 브랜드를 만들어 자조금과 연계된 홍보 마케팅을 시행 중입니다. 지역 축제와 연계된 벌꿀 홍보 부스, 온라인 판매 플랫폼 입점 지원, 택배 포장 지원 등은 실제로 매출 증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도 작년에 ‘진천 꿀’ 공동 브랜드를 통해 지역 유통망에 입점한 경험이 있는데, 단독 판매 대비 1.5배 이상 높은 주문량을 기록했습니다. 브랜드의 힘이란 이렇게 강력합니다.
조례 하나로 변화가 눈에 띄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조례가 있기에 행정이 움직이고, 농가의 제안이 제도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특히 중·소규모 농가들에게는 이러한 지원이 단순한 혜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기반이 됩니다.
3. 조례 운영의 한계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제안
조례 제정은 긍정적인 출발이지만, 여전히 한계도 분명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지역 간 편차입니다. 조례가 존재해도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거나, 담당 부서의 관심이 부족하면 사실상 유명무실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에서는 조례가 만들어진 지 2년이 지났지만, 실제 사업이 전혀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대부분 ‘양봉을 담당할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또한, 농가 간 정보 불균형도 여전합니다. 특히 고령 농가나 외딴 지역의 농가는 조례의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으며, 신청서류를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도 막막해합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군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고를 우연히 보고 알게 되었고, 인근 농가 여러 곳에 직접 안내해 드렸습니다. 이처럼 정책의 현장 도달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제안을 드립니다.
- 전국 통합형 양봉산업 육성 기준 마련
현재는 지자체마다 기준이 달라 형평성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 차원의 양봉 지원 표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조례의 기본 틀을 통일성 있게 설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 지자체 간 모범사례 공유 시스템 구축
전라남도의 야생화 조성 사업, 경북의 브랜드 공동 마케팅, 충북의 기자재 보조 시스템 등은 타 지역에 큰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 공유가 정기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전체 양봉 산업의 수준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 양봉 전문 공무원 및 기술사 육성
조례만큼 중요한 것이 이를 실행할 ‘사람’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축산 또는 농정 담당자가 겸임하는 경우가 많아 전문성이 부족합니다. 전문 인력을 육성하고, 이들이 농가와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조례 운영의 성패를 가릅니다.
지역별 양봉산업 육성 조례는 꿀벌과 농촌, 그리고 농업의 지속 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입니다. 이 조례들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양봉은 단지 꿀을 얻는 산업이 아닌, 지역 경제를 살리고 생태계를 보전하며,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모델 산업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변화는 아직 작지만, 그 변화의 출발점에 조례가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지자체가 이 제도를 강화하고, 농가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양봉 산업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길 기대합니다. 벌이 사라지면 인간도 위험해진다는 말처럼, 이 작은 생명을 지키는 일은 곧 우리 사회 전체를 지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 참고문헌
- 충북 진천군 양봉산업 육성 및 지원 조례 (2023)
- 경상북도 양봉산업 육성 조례 (2022)
- 전라남도 농업기술원 양봉정책자료집 (2023)
- 농림축산식품부 양봉산업 발전계획 (2024)
- 지역농가 인터뷰 및 군청 간담회 회의록 (2024~2025)